목이 유난히 말라서 10분마다 물을 마셔야 했고 한밤중에 몇 번이나 화장실에 가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한 달 만에 5kg이 빠졌다.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병원 원장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채혈을 해주었는데, 혈당이 무려 660㎎/㎗를 기록했다. 이 정도면 심각한 당뇨다. 혈액검사를 자주 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혈당이 높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체중이 급격히 줄어서 췌장암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듣고 이것저것 검사를 받게 되었다. 이미 인슐린 분비가 현저히 감소하고 당뇨병이 악화된 상태라면 말기 췌장암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 나는 이제 죽는 건가. 이게 끝인가.’ 그때 나는 고작 58세였다. 예전부터 혈압이 높고 만성 심부전증에 걸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오래 살지는 못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나에게 ‘죽음’은 여전히 먼 존재였다. 분명하게 죽음에 대해 각오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_021~022쪽에서

‘노인은 사회의 짐’이라는 풍조가 조장되었다. 자숙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은 고령자도 밖에 나가면 운신의 폭이 좁아져 어쩔 수 없이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렇게 3년 가까이 은둔 생활을 강요당한 끝에 요양이 필요한 상태가 되어버렸으니 고령자야말로 코로나 정책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고령자가 건강하고 활기차게 남은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70세가 노화의 갈림길》 《80세의 벽》 등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책들을 써냈다. 이 책들이 많은 독자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좀 일찍 죽어도 좋으니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사람들의 울분이 쌓여있던 상황도 한몫했으리라. 안타깝게도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죽지 않는 인간은 없다. 죽을 확률은 100%이며, 이것은 그 어떤 과학적 진실보다 더욱 진실이다. 인간이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알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죽을 확률은 커진다.
_033쪽에서

심근경색은 동맥경화가 진행되어 관상동맥에 생긴 플라크가 관상동맥을 점차 막아버려 심근에 혈액이 도달하지 못해 심근이 괴사하는 상태를 말한다. 심부전증의 원인으로는 심근경색이나 판막증 등 다양한 질병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심근경색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멀쩡하게 잘 살다가 갑자기 죽을 것인가, 암으로 죽을 것인가를 생각할 때 확률적으로 보면, 심근경색으로 죽는 사람은 암으로 죽는 사람의 12분의 1에 불과하다. 건강검진을 하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라, 대사증후군을 해결하라는 식의 조언을 많이 듣는다. 이는 기본적으로 심근경색의 위험을 낮추기 위한 것이다. 이에 관해서도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심근경색의 위험은 줄어들지만 암 발병 위험은 오히려 늘어난다.
_049쪽에서

독일에서 일하던 지인 이야기다. 아이가 고열이 나서 급히 병원에 데려갔더니 “그냥 감기니까 가만두면 나을 겁니다”라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에도 나을 기미가 없어 다시 병원에 가서 “이대로 열이 내리지 않고 죽으면 어떻게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의 뜻이죠.” 독일인은 지금의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사생관을 갖고 있다. 서양의 사생관은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믿는 종교에 영향을 받는 부분이 크다고 하는데 감기 정도로 죽는 사람은 어떤 방법을 써도 더 살 수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이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_055쪽에서

아버지는 담배를 너무 자주 피운 탓에 폐기종이 심해져 병원에 입원했는데, 어느 날 병원에서 호흡 곤란이 심한데 기관 내 삽관을 해도 되겠냐는 담당 의사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밤 안에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도쿄에 아버지는 오사카의 병원에 있었다. 임종을 보고 싶어서 무심코 담당의에게 “부탁합니다”라고 말해 버렸다. 기관 내 삽관을 승낙한다는 것은 그 후 기관 절개를 하고 인공호흡기에 연결하는 것까지 동의한다는 의미다. 나 자신도 의사이면서 그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인간은 의외로 끈질긴 생물이다. 폐기종을 앓고 있어도 호흡기를 달면 좀처럼 죽지 않는다. 중심정맥영양(中心靜脈營養)이라고 해서 굵은 혈관에 고(高)칼로리 영양이 들어가는 수액을 맞기 때문에 환자는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_069쪽에서

완화 치료로 남은 시간을 충실히 보내시겠습니까? 이처럼 존엄사는 인생의 최후, 그야말로 죽기 직전에 어떻게 할지를 묻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계속하다가 죽기 직전에야 존엄사 논의를 시작한다면 과연 만족스러운 최후를 맞을 수 있을까? 좀더 이른 단계부터 고령자가 노후의 삶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이윽고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들을 독립시켜 부모의 책임을 다했다. 회사도 퇴직했다.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10년이나 20년, 혹은 더 살 수도 있는데, 그 시기를 어떻게 살 것인가?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기까지의 타임라인, 즉 시간 경과와 방식을 그려보고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 결정하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더라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인생이므로 확실한 약속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좀더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_078쪽에서

하지만 내가 보기에 내 몸에 관해 전적으로 의사의 지시에 따르는 것은 타인이 내 삶의 방식을 결정하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 ‘제가 의료 지식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뭐든 다 맡기지 말고 의사와 함께 검사 수치를 정상화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고 단점은 무엇인지 상의하도록 하자. 이것이 ‘내 삶의 방식을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젊은 세대나 한창 일할 나이인 30~60대까지는 혈압과 혈당이 정상 수준으로 유지되면 생활습관병에 걸릴 확률이 낮고 더 오래 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70세가 넘은 노인이 비싼 치료비와 약값을 내고 혈압과 혈당 수치를 강제로 정상화하는 것이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를 거둘지는 크게 의문스럽다.
_102쪽에서

가령 처방받은 약이 혈압이나 혈당을 낮춰 심혈관질환과 뇌혈관질환의 위험을 줄일 수도 있다. 그런데 ‘몸이 불편하다’고 계속 느끼는 상태에서 면역력이 확실히 떨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암이나 감염병에 걸릴 확률이 증가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 먹는 약은 이런 부작용이 있고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비슷한 효과가 있고 근거가 확실한 약으로 바꿔주세요”라고 요청해도 무방하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홈페이지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약과 치료법에 대한 근거 자료가 올라와 있으므로 의사들이 그 자료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_124쪽에서

집에서 간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인을 학대한 경험이 있다는 사람이 40%나 되었다. 한 식구니까 자신이 상대방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치매가 진행되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오늘 저녁은 뭐야?”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몇 분 후 또 같은 말을 묻는다. 몇 번이나 타일렀는데 잊어버리거나 실수하거나, 이것도 싫다거나 저것도 싫다거나 하면 버럭 화가 난다. 하지만 요양시설의 직원은 간병 전문가이므로 그런일에 익숙해서 화를 내지 않는다. 노인을 다루는 데 능숙하므로 간병을 받는 사람도 마음을 상하지 않고 해결되는 장점이 있다. 반면 가족은 간병을 받는 쪽의 정신적 케어에 중점을 두고 그 성격에 따른 간병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데 전념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시설에 들어가면 언론에서 보도되듯이 돌봄을 소홀히 하거나 학대하지 않을지 걱정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사례다.
_171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