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단락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은 지문으로 글 전체의 길이가 너무 길어 내용을 효과적으로 요약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각 문장의 유기적인 관계를 파악하여 두세 단락으로 임의로 구분하여 글 내용을 짧게 ‘명제’로써 요약한 후, 단락별로 요약된 글을 다시 하나의 단락(내용 면에서 부합하는 여러 개의 형식 단락을 한데 묶은 내용 단락)으로 재구성하면서 거듭 정리하면 된다. 즉 긴 글을 임의의 ‘형식 단락’으로 짧게 끊어가며 정리하거나, 또는 내용 면에서 서로 관련되는 형식 단락을 한데 묶어 이를 ‘내용 단락’으로 분류해가면서 정리한다. 그런 다음 그 정리된 내용을 서로 연결하면서 글 전체의 요지를 파악하면, 제시문 내용을 한결 쉽게 요약할 수 있다.
_본문 중에서

참신하고 적절한 ‘사례’를 근거로 들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논증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방법이자, 논거의 확실성과 충실성, 설득력을 높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문장 기술 방식이다. 그렇더라도 문맥과 상황에 맞게 적절한 예시를 들어가며 논증을 펼쳐야 한다. 무엇보다 객관적 타당성과 논리적 인과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비유나 은유, 상징의 묘사 글은 될 수 있으면 사용을 하지 말아야 하며, 특히 자신의 교양이나 지식을 내세울 목적으로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한 예시를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논증할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하게 만드는 범위 내에서의 적절한 사례를 제시해야 한다. 너무 뻔하고 흔한 사례를 들거나 인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가점보다는 자칫 감점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_본문 중에서

눈물은 단순히 눈에 고여 있거나 마음에서만 솟아나는 물질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마음이라는 ‘땅’과 눈이라는 ‘구름’ 사이에서 기(氣)가 감응하여 내리는 비와 같다. 즉, 내면의 감정 변화와 신체 기관이 긴밀하게 상호작용을 하여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이러한 감응의 원리는 사람과 신을 연결하는 제사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형식적인 통곡이나 눈물 없는 제사에는 신이 감응하지 않으며, 오직 진심 어린 슬픔과 성실함이 있어야만 신령한 소통이 가능하다. 결국 신령한 감응과 영적인 교감은 특정한 제사 의식이나 의도적인 통곡이라는 형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이 진정으로 움직이는 순간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며, 모든 영적 교감의 핵심은 감정의 진정성에 있다. (371자)
_본문 중에서

로테는 뇌우 속에서 사람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겉으로는 의연하게 행동하는 주도적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위기가 지나간 뒤, 창밖을 보며 흘린 눈물과 ‘틀롭슈토크’라는 한마디는 그녀의 내면에서 솟아오른 진정 어린 감정의 표출로, 이는 ①처럼 단순한 신체 반응이 아니라 대자연의 경외감이라는 내면의 감정 변화와 신체가 감응하여(상호작용을 하여) 내린 ‘비’와 같다. 결국 그녀의 진심 어린 눈물과 시적 연상은 ‘나’에게 깊은 공감과 감동을 유발하며 영적인 교감을 이룬다. 그 점에서 로테는 감정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타인에 진정으로 감응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③의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영적 교감을 간과한 채 이성에만 치우친 인물로서, 신령한 교감과 마음의 안정은 감정의 진정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육체의 해방으로 보면서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이성적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제자에게 마지막 제물을 바치라는 의무를 당부한 행위 역시 죽음의 순간까지 이성을 잃지 않은 철학적 실천일 뿐으로, ①이 강조하는 내면의 감정과 신체가 상호작용하는 진정성 어린 상태와는 거리가 있다. 결국 ①의 입장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 앞에서도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이성적 태도와 형식적 인 제물 바치기라는 의례만을 중시하면서, 슬픔과 같은 인간적 감정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영적 소통과 자연스러운 감응의 가치를 간과하는 한계를 보인다.
_본문 중에서

5천분의 1 지도를 5만분의 1 지도로 축소할 경우, 마을의 작은 건물이나 뒷골목은 사라지고 큰 건물과 큰길만 남게 된다. 그렇더라도 지도에 담긴 내용의 전체상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와 같은 이치가 이를테면 요약을 통해 담아내야 하는 글의 논리적인 뼈대로써의 논증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와 같다고 이해하면 된다. 결국, 요약이란 글의 ‘핵심 어휘와 중심 단어’를 사용하여 그것들을 논리적·체계적으로 연결하면서 글 전체를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는 지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재구성의 의미는 글 내용의 핵심을 추려서 압축한 후 이를 자신의 언어로 ‘재진술’하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요약은 글의 뼈대이자 중심 생각을 집약하는 핵심어를 그대로 살리면서, 글의 뼈대를 지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곁가지 문장을 간략히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곁가지 문장에 들어있는 중요한 용어와 서술은 글의 뼈대인 핵심어에 맞게 적절한 언어로 수정·변경하면서 글 내용을 보완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이 곧 글 내용의 핵심을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재구성의 의미는, 글감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중요한 용어와 서술을 중심 문장으로 끌어와 보태고 더한 다음, 주제개념을 따라 통일되고 일관된 용어와 서술로 정리하는 일련의 언어적 재해석 작업이라 할 수 있다.
_본문 중에서

학생들은 문학작품 제시문을 읽고 글 내용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문학작품은 서사 글과 묘사 글을 이루고, 글에 은유와 비유, 상징과 함축이 많기에 이를 읽고 해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글 내용의 핵심을 요약하기 까다롭다. 글의 핵심내용을 논증형식에 맞게 정리하여 기술하기 어렵다. ‘서사와 묘사’ 글의 진술 방식을 정확히 알아야 문학작품 제시문의 올바른 해석·요약은 가능하며, 체계적으로 논증을 구성할 수 있다. 문학작품 제시문은 어떤 상황을 제시하는 사례 또는 재료로서 기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머지 제시문은 그 문학작품에 나와 있는 상황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글감이다.
_본문 중에서

사회과학에서 포퓰리즘은 다의적인 용어다. 어떤 이는 포퓰리즘을 ‘인기영합주의’로 규정하고, 다른 이는 ‘민중주의’로 이해한다. 전자가 부정적 의미를 갖는다면, 후자는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얻기 위해 논리보다 감성에 의존하고, 민중이 정치의 주인임을 강조하기 위해 국민주권을 내세우는 것이 포퓰리즘의 핵심을 이룬다. ‘인민중심주의, 반엘리트주의, 엘리트-인민의 구분’이라는 특징을 공유하는 포퓰리즘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좌파 포퓰리즘과 우파 포퓰리즘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좌파 포퓰리즘은 경제적 입장과 관계하며, 우파 포퓰리즘은 사회·문화적 입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좌파 포퓰리즘은 진보적 성향을 따르는 대중집단이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대변하고 포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포용적 포퓰리즘’이라고도 불린다. 좌파 포퓰리즘은 민주주의가 소수집단 보호 및 차이와 다양성의 관용적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주의 사상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민주적 규범과 태도에 긍정적이다.
_본문 중에서

사회적 약자를 우선하여 배려하고 타자와의 공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은’의 생각은, 인권이나 인간 평등을 명목으로 우월한 인간을 거세하려는 것이자 인류의 쇠락과 멸종을 초래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은’은 우월한 인간은 열등한 인간을 억압할 권한이 있음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진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나약한 존재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타자와의 상생과 공존을 중시하는 ?의 ‘은’의 관점에서 ?의 진화론적 인본주의를 비판하면 다음과 같다. ‘은’에 따르면,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는 진화론적 인본주의 사상은 불쌍한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돕기보다는 오히려 이들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할 뿐이다. 그 결과,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개인적으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을 통한 자아실현 의지를 낮추고,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목표와 꿈을 잃는다. 사회적으로는 구성원들에게 적자생존의 원칙을 강제함으로써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하는 약자를 양산하고, 자기와는 다른 의견이나 경험을 결코 용납하려 들지 않으면서 많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등으로, 궁극적으로 인간의 진보를 가로막을 뿐이다.
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