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고령자가 넘어지면 뼈가 잘 부러지니까 조심하라고 하는데, 내 뼈는 무척 튼튼한 것 같다. 80세 정도에 백화점 행사매장에서 골밀도를 측정한 적이 있는데 ‘60세 정도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이 정도는 자랑해도 되지 않을까? 칼슘이 풍부하게 함유된 우유는 어쩌다 한 번 마시고 칼슘 보충제를 챙겨 먹지도 않는다. 하지만 뼈는 튼튼한 모양이다. 어릴 적에 부모님이 우유를 질리도록 마시게 한 덕분에 골밀도가 높아져 ‘뼈 저축’이 된 게 아닐까? 나는 채소를 무척 좋아해서 시판 도시락을 먹을 때도 채소가 듬뿍 들어간 된장국을 끓여서 곁들인다. 된장국 재료로 넣는 소송채와 연근은 칼슘이 풍부하므로, 이런 채소를 매일 먹으면 칼슘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또 뼈를 튼튼하게 하려면 운동이 꼭 필요하다.
_038쪽에서

그래도 채소가 냉장고에 얼마 없으면 불안해지고 슈퍼에 가면 필요 이상으로 사버린다. 좋지 않은 버릇이다. 채소는 샐러드를 만들어 생으로 먹는데, 그때는 철저하게 씻는다. 요즘 채소는 농약을 뿌려서 재배하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예전에는 양배추나 배추에 벌레가 붙어 있기도 했는데, 지금은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농약을 뿌린다는 증거다. 벌레가 붙어 있는 것도 싫지만 농약도 몸에 해가 되기 때문에 수돗물을 틀어둔 채로 꼼꼼하게 씻는다. 인간은 벌레처럼 농약으로 바로 죽진 않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기 때문이다. 잎채소는 샐러드를 만들어서 먹는데, 무나 단호박과 같은 뿌리채소는 조림으로 먹는다. 맛은 간장과 설탕으로 조절한다. 나의 단골 양념이다. 가지는 생으로, 세로로 이등분하고 그것을 더 잘게 찢어서 조미료와 간장으로 버무린다.
_051쪽에서

버터와 마가린이 건강에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99세나 되어서 굳이 버터와 마가린을 끊을 생각은 없다. 한 번에 몇백 그램을 섭취하는 것도 아니니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다. 병원 문을 닫기 전까지는 근처에 있는 밥집에서 점심을 먹곤 했다. 지금은 병원을 운영하지 않으므로 하루에 두 끼만 먹는다. 나는 저녁에만 음식을 만든다. 그게 습관이지만 극단 공연일이 가까워지거나 연극이나 의학 관련 잡지의 원고 마감일이 닥쳐올 때, 그리고 대본을 써야 할 때 등 시간이 없을 때는 무리해서 요리하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오거나 컵라면을 먹을 때도 있다. 시판 도시락을 먹을 때는 반드시 된장국을 끓여서 함께 먹는다. 건강을 위해라기보다는 도시락만 먹으면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기 때문이다.
_060쪽에서

술은 20대에는 약간 마셨다. 의사가 막 되었을 무렵에는 병원에서 소독에 사용하는 에탄올이라는 알코올을 탈지면에 적셔서 쪽쪽 빨았다. 마녀가 아니라 흡혈귀처럼 말이다.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여성이 술을 직접 사는 것이 손가락질당하는 시대여서가 아닐까? 지금은 여성 혼자서 술집에 들어가도 아무렇지도 않으니 좋은 시대다. 평소 내가 교류하는 극단원들은 하나같이 애주가다. 술자리에서 신나게 마시지만 나는 컵에 1센티미터 정도만 마셔도 취해버린다. 한 번은 큰일 날뻔한 적이 있다. 단원 중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달콤하고 맛있을 거예요’라고 하면서 내게 잔을 건네주었다.
_076쪽에서

즉, 98세인 나는 무조건 백내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용케 수술을 받지 않고 살 수 있었구나, 놀랍기만 하다. 나는 이비인후과 의사로서 부비강염 환자 수술을 많이 해왔지만, 막상 내가 수술을 받을 처지자 되자 두려움이 앞서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사물이 보이지 않고 원고지에 글씨를 쓰는 것도 힘들어졌다. 이러면 원고도 쓸 수 없고 책도 읽을 수 없고 사물이 뿌옇게 보여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라 위험하다. 그런 이유로 마침내 버티기를 그만두었다. 그래도 모르는 병원의 의사에게 수술을 받는 게 무서워서 지인에게 부탁해 백내장 수술 전문가가 있는 병원을 소개받았다. 수술 전에 전신 검사를 한다고 해서 혈액 검사를 받았다. 그런 검사는 수십 년 만이었다.
_087쪽에서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니 얼굴에 주름이 생겼고 ‘이건 좀 문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스킨 케어’에 의문을 느끼게 된 것이다. 계속 혼자 살아서 누구한테 피부 관리를 하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고 내 방식대로 해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젊었을 때는 피부에 유분이 있고 탄력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피부가 건조해지고 주름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은 클렌징 크림으로 화장을 닦고 일반 비누로 세안을 하고 토너를 바른 다음 나이트 크림으로 마사지를 한다. 마사지는 세게 문지르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가볍게 마사지한 후 티슈로 닦아준다. 그 후에는 피부를 건강하게 해준다는 에센스를 바른다. 98세에 백내장 수술을 했다고 앞에서 이야기했는데, 수술 후에는 사물이 또렷하게 보이게 되었다. 탁한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 렌즈를 삽입하기 때문이다.
_099쪽에서

나는 한 번 연애를 시작하면 꽤 오래 가는데 가장 짧을 때도 몇 년간 관계를 이어나갔던 것 같다. 하지만 직장 동료인 의사와는 연애하지 않기로 했다. 의사는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간호사 등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고 유혹이 많아 노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물론 성실한 의사도 있다). 나는 의사와 진지한 관계가 되면 마지막에는 배신당하고 슬퍼할 것이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항상 사랑을 했지만, 결혼을 하고 싶진 않았다. 이상이 너무 높았던 건지 어쩌다 보니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경제적으로 독립해 있어서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 열중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마음이 채워지고 외로움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_111쪽에서

나는 휴대폰도 스마트폰이 아닌 폴더폰을 사용한다. 언젠가는 폴더폰이 판매 종료될 것이라고 하니 은근히 걱정이다. 이처럼 나는 극단적인 ‘기계치’이므로 컴퓨터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해서 나를 도와주는 극단원이 원고를 대신 입력해준다. 불편하다고 하면 불편하지만 이제 와서 배우려는 마음은 없다. 젊은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이 존재했고 컴퓨터도 흔해서 자연스럽게 IT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처럼 90살이 넘은 노인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들에 비하면 완전 초보나 다름없다. 오히려 마음을 편히 갖고 내 길을 간다고 생각하는 편이 이런저런 고민 없이 끝난다. 고령자가 기계치가 되는 것은 세상에 흔히 있으며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늙음’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이런 세상이 되었구나, 놀랍다’하고 감탄하면 되는 것이다.
_119쪽에서

내가 죽을 때의 일은 전혀 상상할 수 없지만, 괴로워하다가 죽고 싶지는 않다. 병상에 누워서 주변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는 것도 사양하고 싶다. 편안하게 어느 날 덜컥 가는 게 이상적이다. 흔히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죽고 싶다’라고들 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다른 사람들에게 큰 폐를 끼치게 되니 그것도 곤란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두렵다. 나는 저세상이나 천국을 믿지 않는다. 그저 나라는 육체가 사라지는 거로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다. 나이를 생각하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지금 죽음을 생각한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까.
_134쪽에서

요즘 사람들에게 등화관제가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다. 전시 중에는 적의 공습 목표가 되지 않도록 전등을 검은 천으로 덮는 규정이 있었다. 빛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한 것이다. 검은 천을 걷어내니 집안이 갑자기 환해지고 전쟁이 정말 끝났음을 실감했다. 동시에 마당에 파놓은 방공호에서 ‘여기에 소이탄을 떨어뜨리지 마세요’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어져 안심했다. 그때 우리 집에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다. 쿠리라는 이름이었다. 새하얀 고양이지만 전쟁 중에는 검은 옷을 입혔다. 몸이 흰색이면 미군의 전투기에 발견되어 기관총으로 사살된다는 이유로 흰 개나 고양이는 키우면 안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_197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