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이전 자신의 가족보다 더욱더 힘들게 옥죄었다. 시댁 역시 그러했다. 인정사정 두지 않고 몰아붙였다. 이전 가족은 그래도 눈치라도 있었는데, 시댁에서는 아예 무시하고 강요만 했다. 돈을 벌어오는 일 이외에 집안에서도 궂은일까지 모두 맡을 수밖에 없었다. 집안 피라미드에서 자신은 가장 아래에 있었고, 잡일은 죄다 떠넘기기 일쑤였던 때문이었다. 딸을 낳았을 때도 구박은 여전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들을 낳으려고 여러 번 낙태 경험도 했다. 그나마 아들을 낳은 것은 큰 위안이 되었다.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서 술에 찌들어 행패를 부리는데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정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지만, 아들딸이 자신의 곁에 있어서 꿋꿋하게 일했다. 남편이 흥청망청 살면서도 외도 사건을 일으켰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 시댁은 도리어 그 책임을 며느리에게 돌렸다. 참고 살아왔는데 도리어 죄인 낙인까지 찍으므로 견디기가 어려웠다. 결혼한 지 30년 정도가 지나 나이 50줄에 이르자 여러 증상이 나타났다. 다른 사람들은 갱년기나 폐경기라면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증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내내 억울하고 분한 삶을 살아오면서 차곡차곡 쌓인 감정의 응어리를 이제 더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_28쪽에서

인간의 감정이 바로 분노다. 자극에 대한 저항으로 우리는 즉각 반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몸은 이미 반응을 했다. 이후 짧은 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평가하고, 어떻게 반응할지를 결정한다. 분노할 것인가, 그냥 넘어갈 것인가? 분노의 모습은 다양하다. 짜증이나 삐짐처럼 개인이 가지는 불편함도 있지만 적개심, 공격성과 같은 행동으로 이어지는 감정이기도 하다. 더구나 분노를 표출하고 싶어도 드러내지 못하거나 화를 낼까 말까를 망설이다 보면 불안이라는 감정이 자리를 잡으며, 정작 분노 드러내기를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면 무기력에서 시작하여 결국 우울이라는 감정으로 나타나게 된다. 분노에서 시작하여 불안을 지나 우울로 이어지는 정서의 문제가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분노는 반응으로는 드러나지만, 지속적이지는 않다고 설명한다. 계속 분노를 터뜨리기는 어려운 노릇인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반응적 감정이 차츰 줄어들었다가 가끔 표출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지속적 감정으로 변화하게 된다.
_59쪽에서

경고반응의 시기에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싸울 것인가, 도망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생존 전략이 급성 스트레스 반응으로 이어진다. 저항단계에서 겉으로는 정상으로 복귀한 듯하지만, 내부적으로 신경 및 호르몬의 변화가 지속되어 코티솔과 인슐린의 증가, 지방의 축적이 진행되며 만성 스트레스 상황이 된다. 탈진 단계에서는 지속적인 저항의 결과로 부교감신경의 기능뿐 아니라 신체의 모든 기능이 저하되어 가용한 자원과 에너지 소진 상태가 되어 버린다. 만성 스트레스의 결과로 나타나는 일반적응증후군은 시상하부, 뇌하수체, 부신피질 축의 호르몬 변화와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즉, 스트레스는 자율신경 반응을 일으키고, 스트레스가 장기화하였을 때는 다양한 2차적 문제들을 유발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는 결과로 남게 되는 증상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다. 이미 신경계, 내분비계의 기능적 이상을 지나서 신체적인 증상을 유발한 상태에서는 이에 대한 치료가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는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생활습관병도 있지만, 뇌졸중이나 암처럼 다시 원상태로 돌이키기 어려운 질환이 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결국 치료에 전념해야 한다.
_72쪽에서

만약 자신이 화를 내는 유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수동적, 수동 공격적, 투영 공격적 유형이 아닌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 세 유형 역시 다른 형태로 화를 낼 수밖에 없는데, 스스로 화를 내지는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분노를 돋울 수 있다는 면에서 때로는 더 위험하다고도 할 수 있다. 분노는 다른 감정에 비해 유독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분노는 감정에서 시작하지만, 화를 곱씹으면서 증폭이 되고, 밖으로 표현하면서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것이 상대방의 감정, 생각, 행동을 자극하며 확장되면 사회문제로 이어지는 위협적인 감정이 된다. 사회적 관점에서 분노는 약자로 향하게 된다. 화병의 경우에도 가정이나 학교, 직장,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게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억울함을 어디엔가는 드러내야 하기에 스트레스 풀 대상을 찾고, 결국은 약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분노가 강자에서 약자에게 전달되어 화병으로 이행되는 과정은 전통적인 동양의 위계적 문화에서는 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정에서는 자녀 혹은 부인이 받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직장 내에서는 부하 직원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그 사회의 가장 약자가 모든 스트레스를 감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회 변화에 따라 약자가 바뀐다고도 한다. 상하가 바뀌고, 갑을이 바뀐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회 변화란 실제 당하는 약자의 처지에서는 남의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바뀌는 현상은 분명 있을 수 있지만, 사회 변화는 일상에서의 개인 변화만큼 빠르지 않다.
_85쪽에서

분노는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감정이어서 연구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분노를 정의하였고, 또 분노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공격성이나 적개심과 같은 개념을 연구의 주제로 삼았고, 이어 나타나는 고통과 증상으로 연구 영역을 넓혔다. 뇌과학을 통해 분노의 현상을 설명하였고, 화병이라는 질병 모델을 통해 분노의 시간적 변화를 모델화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이 진행되는 가운데 분노의 평가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분노를 조작적으로 정의하고, 그 정의에 부합한 측정 방법들을 개발한 것이다. 분노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므로 분노 상태를 평가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했고, 그러한 분노가 일어나기까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분노와 관련된 특성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즉, 지금, 이 순간의 분노 점수와 함께, 상황에 따라 분노를 일으키는 개인 특성, 그리고 분노와 관련된 개인 행동을 관찰하는 분노 표현방식 등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 물론 분노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도구들 역시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 도구는 분노를 직접적으로 측정하기보다는 분노로 인하여 나타나는 인체의 생리적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다.
_108쪽에서

심지어 편안한 일요일 아침조차도 혈압이 떨어지지 않고 높은 경우가 많았다. 가슴 두근거림과 뻐근함이 덩달아 나타나기 시작했다. 순환기내과를 방문하여 검진받았더니,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 문제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주의를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쉽게 화를 내는 스스로 발견했다. 자신이 열심히 살아온 데 견주면,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자주 화가 났다.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과 점점 더 불편한 관계가 되었고, 가족들하고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일만 하느라 아내와 자녀들과 그다지 따뜻한 관계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은 서먹하게 지내면서, 자신이 화를 자주 낸다는 걸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혈압은 지속해서 문제가 되므로, 점점 더 걱정이 커진다. 화병 증상 가운데, 특히 가슴의 두근거림과 답답함이 자주 나타난다. 더 큰 문제는 분노가 빈번하게 이는 데다가 참을성도 부족해져서 욱하는 마음뿐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비난, 심지어는 욕 같은 것도 불쑥불쑥 나온다.
_148쪽에서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리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므로,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다. 이처럼 필요한 감정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적절하게 대응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분노는 좋은 감정이 될 수 있다. 물론 상대방에게 이차적인 또 다른 감정을 만들어 낸다면, 반드시 좋다고 할 수 없기는 하다.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불씨를 남기는 것이기 때문에 잠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도 진정한 해결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분노가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조절의 범위를 넘어섰을 때이다. 분노의 표출이 정도를 넘게 되면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되며, 이것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또 한 가지, 분노가 조절 범위를 넘으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문제도 있다. 흔히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하듯이, 나에게 분노를 일으킨 상대가 아니라 분노를 풀 수 있는 대상을 찾아서 방출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분노가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리고 분노가 자기 자신을 향하는 경우도 있다. 효과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분노는 자책으로 바뀌어 자신을 공격하게 된다. 자책할 때도 분노의 에너지가 클수록 자책 또한 심해지게 된다. 결국, 핵심은 분노를 자기조절 범위 내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조절 범위 내에 둔 분노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때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나를 지켜주는 감정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감정이 된다.
_197쪽에서

인지행동치료는 분노 관리를 위한 대표적인 비약물요법으로 여겨진다. 분노에 대한 인지행동치료는 공격적인 행동 그리고 이와 관련된 감정을 조절하는 것, 수반하여 발생한 사회적 문제해결을 목표로 한다. 즉, 분노라는 감정뿐 아니라, 공격적 행동 그리고 사회적 문제를 중요한 치료 대상으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심리치료는 공격적인 행동의 원인 그리고 그 결과를 파악하게 하고, 분노 표현을 알아차리게 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역기능적 신념을 해결하는 등, 분노 감정과 공격적인 행동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적절하고 기능적인 반응으로 대체하는 것을 돕는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치료의 효과는 아동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단에서 분노조절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스트레스에 대한 분노반응성도 감소하는데, 158명을 대상으로 12주 동안 인지행동치료를 시행한 임상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지행동치료를 시행한 군에서는 일상에서 스트레스 요인에 대하여 부정적 정서로 반응하는 것이 유의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분노 조절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에서 제시하는 치료 요소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_248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