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중용(中庸)’을 추구한다
오령산은 체내 수분이 과도하면 이뇨 작용을 발휘
탈수 상태이면 소변량을 줄여 체내 수분을 유지
양면적 작용을 보인다

대부분의 신장 질환은 면역 시스템 이상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면역 시스템은 ‘자기’와 ‘비자기’를 구분하여, 비자기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방어 구조다. 이 면역 시스템이 적절히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면역 저하 상태다. 감염, 악성종양(암) 발생 등과 관련된 상태다. 저하된 면역을 높이는 대표적인 치료제는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다. 둘째, 면역 항진 상태다. 알레르기, 결합조직질환, 신염 발생 등과 같이 면역 반응이 과도하거나 폭주하는 상태다. 이를 조절·억제하는 대표적인 치료제가 스테로이드제다. 셋째, 면역 혼탁 상태다. 체내 면역 시스템 전체가 전반적으로 저하되거나 항진되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일부는 저하, 일부는 항진 상태가 혼재한다. 이러한 경우, 면역 저하와 면역 항진 양쪽의 질환이 모두 발병할 수 있다. 노화 역시 면역 혼탁 상태의 한 예다. 면역 혼탁 상태에서는 감염 등 면역 저하 관련 질환에 쉽게 발생할 뿐 아니라, 면역 과잉 반응으로 인한 결합조직질환이 쉽게 동반되게 된다. 이때, 면역 기능을 균형 잡힌 ‘중용’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예가 오령산이다. 오령산은 체내 수분이 과도하면 이뇨 작용을 발휘하고, 탈수 상태이면 소변량을 줄여 체내 수분을 유지하는 양면적 작용을 보인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방향을 달리하는 조절 능력은 현대 서양의학의 그 어떤 치료제도 구현하지 못하는 특징이다.

현재의 수치와 증상을 종합하여
한약을 선택한다

신장 질환에서의 한약 치료는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처방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증상과 체질, 혈액검사 수치, 현재 시행 중인 치료에 따라 사용하기 적합한 한약이 달라진다. 특히 혈중 크레아티닌 수치에 따라서도 처방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한약 치료는 신기능이나 소변검사와 같은 임상 수치뿐 아니라, 전신 권태감, 부종, 배뇨장애, 두통, 혈압상승, 피부 소양감, 소화기 증상, 빈혈 등 환자가 겪는 다양한 증상의 개선도 함께 목표로 삼는다. 과거에는 질환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상태들이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질병으로 분류되고 치료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를 들어 고혈압이나 고콜레스테롤혈증처럼, 현재는 검사 수치를 기준으로 진단 가능한 병태들도 과거에는 질병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 중에서도 질병으로 간주되던 것은 말기 상태뿐이었으며, 실제 치료의 대상이 되던 것도 그런 경우에 국한되어 왔다. 말기 만성 신장병에 동반된 요독증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조기 만성 신장병 진단과 조기 개입이 가능해졌고, 그에 따라 질환의 진행을 억제할 가능성도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말기 신부전으로 진행되어 투석이 필요한 환자 수는 적지 않다. 그동안 만성 신장병에 대한 한약 치료는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만성 신장병 치료 전략 중 하나로 점차 인식되고 있다.

만성 신장병으로 진단되면
원인 질환에 대한 특이적 치료와
만성 신장병 전반에 공통되는 표준치료

만성 신장병은 개입 시점이 늦어질수록 쉽게 불가역적인 신기능 저하로 진행해버리는 질환이다.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치료를 미루다가 투석 치료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만성 신장병의 기본 치료 전략은 RAS계 억제제를 이용한 혈압 및 단백뇨 조절이며, 최근에는 SGLT2 억제제가 신장과 심혈관계 보호 효과를 보인다는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비당뇨병성 만성 신장병에도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만성 신장병의 진행 및 합병증 관리를 위해 수분, 전해질, 산염기 평형, 요산, 이상지질혈증, 신성빈혈, 골·미네랄 대사 이상(CKD-MBD)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만성 신장병의 비투석기 단계부터 전신적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다면적 합병증에 대해, 서양의학적 접근이 한계를 보이는 경우도 있으며, 이때 한방의학이 유용한 보완 전략이 될 수 있다. 체력이 저하된 고령자나 만성 신장병 환자에게도 한약은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만성 신장병 치료를 한약으로만 시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인의 지혜로 전해 내려온 한방의학과 현대의료의 훌륭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두 가지 의학의 장점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방식으로 만성 신장병 치료를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